LUXURY_ 자연을 품은 오트쿠튀르, 한복 한복 디자이너 담연 이혜순 인터뷰
design.co.kr 로그인 | 회원가입 | 마이페이지 | 고객센터
데코&푸드        패션&뷰티                       
   
Home > 컬처&디자인 > 피플 인터뷰
피플&컬쳐


 
자연을 품은 오트쿠튀르, 한복
한복 디자이너 담연 이혜순 인터뷰
기사 공유페이스북트위터
해외 유명 브랜드의 컬렉션은 술술 읊으면서도 정작 우리 옷 한복에 대해서는 말문이 막히는 이가 많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 특히 의식주에 관한 것을 모르고서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보다 ‘한국식 럭셔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한복의 위상이 점점 약해지는 요즘, ‘수제 명품’ 한복의 스타일과 과학, 멋과 매력을 이야기한다.

청담동 담연 매장에서 사진 촬영을 한 이혜순은 시종일관 발그레한 얼굴로 수줍어했다. 그녀는 여기 보이는 아름드리 나무와 벽돌 계단, 햇살 가득 들어오는 통창이 마음에 들어 7년 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계절마다 한복을 입는 것이 매일 존 갈리아노의 의상을 입는 것만큼이나 럭셔리한 것이다”라는 주장은 언뜻 한복 짓는 이의 말로 들린다. 사실, 이 자신만만한 정의에 동조든 비동조든 몇 마디 말을 보태기가 쉽지 않다. 한복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자주 입을 때 비로소 아르마니나 프라다의 똑 떨어지는 매력을 실감하듯 한복의 멋을 알려면 수시로 입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질 않으니 언뜻 감이 오지 않는다. 첫돌, 결혼식, 부모님의 칠순 잔치 등을 제외하면 ‘한복 입는 날’은 우리 생의 달력에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잘 지은 한복을 보면 ‘아름답다’, ‘고급스럽다’는 동경이 자연스레 인다. 담연 이혜순 선생의 작품을 보면 이러한 감정이 더욱 부풀어 오른다. 깊고 담담한 색감, 천연 섬유의 최고급 원단, 단정하고 유려한 선, 솜과 주름, 바느질 기법을 이용한 디테일이 어우러져 격조 있는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그녀의 한복은 영화에서도 빛났다.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쌍화점>의 의상을 제작한 이가 그다. 그 수많은 의상 중 가장 ‘이혜순다운’ 것은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전도연이 맡았던 숙부인 정씨의 의상이다. 수수한 파스텔 톤의 의상이어서 강렬하진 않지만 보면 볼수록 매혹적인 느낌. 하지만 그의 모든 작품이 이렇듯 음전한 것은 아니다.
약 1년의 제작 기간을 거쳐 2007년에 선보인 그녀의 화보집은 ‘한복’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속이 비치는 홑겹 원단으로 지어 은근히 고혹적인 저고리, 모란 문양을 넣어 화려한 모본단模本緞 치마, 서늘한 푸른색이 인상적인 남성용 도포 등 모든 작품이 미려하다.
이렇듯 아름다운 한복이 유명 패션 브랜드의 옷처럼 소비되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역시 착장과 거동의 불편함(혹은 번거로움)이 그 이유로 지적된다. 회의를 할 때도,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도, 자동차를 탈 때도, 가벼운 칵테일파티에 갈 때도 한복은 살짝 부담스럽다. 왠지 IT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는 “한복을 경험하지 못한 데서 오는 선입견에 다름 아니다”라고 이혜순은 차분하게 말한다. “한복이야말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옷이고, 과학적인 옷이며, 조상 대대로 누린 최고의 사치인데 이를 아는 이가 많지 않다!” 한복과 일상, 한복과 과학, 한복과 럭셔리… 모두가 왠지 낯설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롭다.

한복 짓는 이니 사시사철 한복만 입겠다. 아무래도 그렇다. 친구를 만날 때도, 비행기를 탈 때도, 상갓집에 갈 때도 한복을 입는다. 주말에는 양재동 꽃시장에 가서 꽃향기를 흠뻑 맡고 대형 서점에 가 수필집과 음반 둘러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때도 역시 한복을 입는다.
한복을 입고 비행기를 타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해외 순방길에 나서는 영부인도 기내에서까지 한복을 입지는 않을 것 같다. 불편하지 않나?
그렇지 않다. 막상 한복을 입어보면 무척 편하다. 몸매가 그렇게 훌륭하지 않아도 충분히 맵시 있고 기품 있게 연출할 수 있으며 옷 자체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몸이 편하다. 한복을 입고 비행기를 타면 왠지 기품 있어 보여서인지 종종 (많은 경쟁자를 이기고) 업그레이드 서비스도 받으니 기분 좋다. 출근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들겠다고 걱정하는 분이 많지만 습관이 되면 세안까지 포함해 20분이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한복은 일상복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은 경험 없음에서 비롯한 선입견이다.
하지만 한복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치마 밑단이 거슬려 빨리 걷지도 못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럭셔리다. 현대인은 말도, 걸음걸이도, 식사도, 생각도 빨리빨리 하지만 쫓기듯 사는 것은 럭셔리가 아닐 것이다. 한복만큼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는 의상은 없다.
여성의 경우 머리 때문에라도 한복 입는 걸 주저하는 것 같다. 어머니나 누님을 보면 ‘최소 1시간’이 걸리더라. 한복에 어울리는 머리가 따로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데 한복에 ‘이건 안 돼’ 하는 것은 없다. 목걸이나 귀고리도, 묶은 머리나, 짧은 머리, 말아 올린 머리도, 안경도 괜찮다. 본인이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 한복에 맞는 스타일은 분명 있다. 이를테면 빨간 뿔테 안경은 한복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 않나?

(위) 제비꽃색 원단이 고급스러운 생명주 번령깃 포.


1 겹겹이 쌓아 자연스러운 볼륨을 만든 속곳 모음과 무명 가슴 싸개.
2 연분홍과 흰색으로 표현한 웨딩 한복.


사람들은 왜 한복을 입지 않을까? 언젠가 연세대에 강의를 나갔는데 거기에 있던 학생도 같은 질문을 하더라. 아마도 불편하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일 텐데, 이는 한복을 자주 입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캐주얼만 입다가 정장을 입으면 불편한 것과 마찬가지다. 한복은 불편한 옷이 아니라 조심스러운 옷이다. 나 같은 경우 레스토랑에서 음식 맛이 떨어지는 건 용서가 돼도 의자를 툭 쳐놓고도 미안하다는 얘기를 하지 않거나 그릇을 탁탁 놓으면 대번에 안색이 바뀐다. 그런데 한복을 입으면 감정을 그렇듯 노골적으로 표출하지 않게 된다. 한복과 더불어 좀 더 부드러워지고 차분해지며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즉각적으로 화를 내거나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일에 한 단계 템포를 늦춰 신중하게 대응하니 잔 실수를 줄일 수 있다.
한복을 입어 좋은 점은 무엇인가? 언제, 어디서건 주목을 받으니 ‘주연’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기분이다. 택시를 타거나 숍에 가면 “곱게 차리셨네요”라는 칭찬을 듣는데 이 역시 기분 좋은 일이다. 한복을 입는 행위는 자존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모노는 입는 일이 정말이지 불편한 옷이지만 일본인은 중요한 행사나 파티에 기모노를 입지 않는가! 가치를 높게 인정해 가격도 상당히 비싸지만 그들은 될 수 있는 한 기모노를 입으려고 노력한다. 그 향유의 과정을 통해 전통 의복은 자연스럽게 삶에 뿌리를 내리고, 그 모습은 특유의 문화가 되어 한 나라의 이미지를 완성한다. 한복을 입고 있으면 우리 것을 향유하는 데서 비롯한 긍지와 자부심이 느껴진다.


3 이혜순은 속곳과 버선까지 완벽하게 포장해 주문한 이에게 전달한다.
4 고운 면을 손으로 누비고 겨드랑이에 주름을 잡은 포. 저고리와 치마는 흰색의 무명.


한복을 오트 쿠튀르라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양장점에서는 상의와 하의, 즉 겉옷만 맞추면 되지만 한복점에서는 버선, 신발은 물론 속곳까지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것으로 맞춰준다. 예복인지, 일상복인지, 치마 기장이 어떠한지에 따라 신발의 굽도 다르게 제안한다. 어깨가 넓은 이를 위해서는 깃을 넓혀 시각적으로 어깨를 좁아 보이게 하고, 목이 굵은 이를 위해서는 깃을 좁혀 날렵함을 살린다. 고객과 의견을 나누고 피팅을 하고 재단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각 방면, 이를테면 염색, 손바느질, 홍두깨질 전문가는 물론 치마, 저고리, 두루마기, 속곳 장인이 함께 공을 들인다. 하나의 작품이 나오는 데 30명 정도의 땀이 들어가는 셈이니 진정한 ‘명품’이라 할 수 있다. 원단 역시 명품 패션 브랜드의 그것 못지않다. 특히 속곳은 천연 소재로만 짓는다. 피부가 숨을 쉬도록 하기 위해서다. 옛 어르신은 신생아를 위해 배냇저고리를 만들 때 절대 새 천을 사용하지 않았다. 어른이 입던 옷을 여러 번 빨아 솔기 등이 완전히 부드러워졌을 때 비로소 그 천으로 배냇저고리를 만들었다. 신생아가 부드럽게 느끼고,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 지혜가 한복에도 투영돼 있다. 생명주(고치에서 풀어낸 실로 직조한 명주)는 여름철의 대표적 속곳 원단으로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으면서도 몸에 닿으면 찬 느낌이 들어 무척 시원하다. 기능성은 물론 세심한 배려까지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몸과 체형에 대한 배려 없이 미리 만들어진 의복을 돈만 주고 구매하는 것은 진정한 럭셔리라고 할 수 없다.
오트 쿠튀르니 가격도 만만치 않겠다. 120만~180만 원 선이다. 비싸게 들릴 수 있지만 거품이 없는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한 땀 한 땀 침선 장인의 손길이 들어가고, 몸에 좋은 원단만 골라 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장인匠人’에 대한 예우와 존경의 문화가 부족한 것 같아 아쉽고 안타깝다.
하지만 ‘한복을 입는 것이 럭셔리’니 모든 국민에게 계몽 운동 하듯 한복을 입으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보다 수시로 입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어야 할 것 같은데. 물론이다. 입을 때 편안함과 세련됨을 느껴야 하는 대상은 디자이너가 아닌 고객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한복 디자이너로서 책임감과 사명을 느끼고 있다. 미니 드레스, 천연 섬유를 써 한복 스타일로 재해석한 나이트가운 등을 선보이는 건 이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모던 한복’에 관한 관심이 오히려 일본에서 뜨겁다는 거다. 한복의 디테일을 살린 생활 소품 디자인을 일본에서 제안해 제작한 적이 있다. 영화 <스캔들>을 보고 주인공들이 입은 한복의 원단을 구매할 수 없겠느냐고 문의한 이도 많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 한복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어 한복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하다. 실제 한복 중에는 버버리 코트를 대신할 만큼 멋스러운 장옷도, 유서 깊은 파티에 입고 나가기에도 부족함 없는 드레스형 한복도 많지만 이를 알고 찾는 이는 드물다.


5 무명으로 작업한 액주음포. 한국식 디테일이 살아 있는 의상으로 소매의 연결 부분을 탈착할 수 있도록 해 편의성을 높였다.
6 조선 시대 중기의 철릭(남성용 롱 코트) 형태로 고운 주름을 잡은 홑 작업.


크루즈 디너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여성을 본 적이 있다. 무척 기품 있어 보였다. 2006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적홍색 투명 저고리에 짙은 회색 치마를 매치한 이영애도 잊히지 않는다. 한복만큼 입는 이를 돋보이게 하는 의상도 없다. 여유, 자존감, 자신만의 심미안과 스타일 등이 전제되지 않으면 선뜻 입을 생각을 못하는 것이 한복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물론 자신이 속한 국가의 문화까지 대변하므로 남다른 ‘격’도 느끼게 한다. 옛날에도 그렇지만 오늘날에도 한복은 가장 사치스러운 옷이다. 양장처럼 자주 입지 않는 옷마저 최고로 선택해 구비하는 셈이니 그 자체가 사치인 것이다.
우리 조상에게 한복은 실제 화려하고 럭셔리한 것이었나? 물론이다. 예부터 우리 조상은 계절에 맞춰 각기 다른 소재와 장식으로 한복을 만들어 입었다. 그것이 우리 조상의 럭셔리였다. 초봄과 늦가을에는 문명주紋明紬(굵은 명주실로 짠 직물에 무늬를 넣은 원단), 여름에는 대마의 줄기 껍질을 벗겨 만든 실로 짜서 통풍이 잘되고 시원한 안동포安東布를 이용해 옷을 지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시는 여름철 사대부가 즐겨 입던 대표적 고급 옷감이었다. 가을에는 두껍지 않아 선선한 계절에 입기 좋은데다 구름 문양을 넣어 운치가 있는 운문사雲紋紗를, 겨울이면 복숭아, 석류, 불수 문양이 섞여 있어 화려한 도류불수단桃榴佛手緞이나 연꽃무늬가 아름다운 연화문단蓮花紋緞 같은 원단을 사용했다. 사시사철 최고의 옷을 갖추어 입고 계절을 음미하는 것을 진정한 럭셔리로 생각했던 거다. 한복을 럭셔리한 의상이라 부르는 또 다른 이유는 자연과 과학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양장과 달리 한복은 굉장히 풍성해 속곳 안으로 공기가 통한다. 피부가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다. 또 몸 안으로 들어온 공기를 옷이 따뜻하게 감싸 보온에도 뛰어나다. 여름이면 목이나 소맷부리로 공기와 바람이 송송 들어가고, 겨울이면 토시와 목도리 등을 둘러 그 바람을 차단하니 자연친화적이면서도 과학적이다. 기법에서도 장인이 만드는 요즘의 명품 못지않다. 각 계절에 적합한 바느질법까지 따로 있다. 여름에는 ‘깨끼’라고 해서 솔기가 남지 않아 깨끗하고 시원한 느낌이 드는 바느질을 했고, 겨울에는 ‘물겹’ 바느질이라고 해서 솔기가 보여 시각적으로 따뜻하고 튼튼해 보이도록 했다. 어깨, 겨드랑이 밑 등 힘이 많이 들어가거나 잘 트이는 부분에는 ‘비대’라고 해서 원단을 덧대 한번 더 중심을 잡아주었다.
고증이나 복식사를 소개한 책자 등을 보면 옛 조상들은 액세서리로도 멋을 냈던데. 그 시대의 상류층은 봄과 가을엔 산호나 은, 여름에는 비취, 겨울에는 금과 호박 같은 주얼리를 한복과 매치할 줄 알았다. 노리개, 뒤꽂이, 가락지 등을 활용함은 물론이다. 그러한 액세서리들은 각 계절 옷감과 기막히게 어울린다. 이를테면 여름날, 얇은 모시 소재의 여름 한복을 입고 손가락에 시원한 옥 쌍가락지를 끼는 식이다. 여성들은 노리개 안에 원단의 향을 묻혀 들고 다녔는데 살짝살짝 움직일 때마다 향기가 나 요즘의 향수 같은 기능을 했다. 한복의 럭셔리는 여성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 남성의 경우 상투가 보이지 않도록 (상투)관을 썼는데 여기에 금, 은 등의 소재로 장식미를 더했다. 또 겉감은 무명으로, 안감은 명주로 하여 옷을 지으면 옷감과 옷감 사이에 공기층이 있는 것처럼 형태감이 살아나 무척 고급스러운것을 알고 자주 이용했다. 그런 한복을 보면 마치 옷에서 향이 나는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장식은 많지 않지만 보면 볼수록 화려하다.


1 통창 안으로 햇볕이 가득 들어오는 이곳은 사색을 위해 그녀가 가장 자주 찾는 공간이다.

손바느질을 못한다고 들었다. 한복 짓는 이에게 손바느질은 필수이지 않나? 맞다. 동정 하나도 제대로 달지 못한다.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반드시 바느질을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기법과 원단의 특성 등은 훤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확한 지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바느질은 못하지만 색과 원단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원단을 찬찬히 보고, 만져보면 어떤 사람에게 잘 어울릴지, 어떤 바느질 기법을 사용하면 좋을지, 어떤 디테일을 가미하면 좋을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손바느질을 못하는 걸 보면 한복 명인에게 사사한 것은 아닐 텐데 어떻게 한복 디자이너가 되었나? 대학교 4학년 때 약혼을 하고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해 시할머니, 시부모님, 남편, 자식을 포함해 4대가 한데 살았다. 시누 둘에 우리 아들 둘까지 있었으니 9명이 한집에 살았다. 어려서부터 현모양처가 꿈인지라 집을 예쁘게 꾸미고, 예쁜 살림살이를 사고 만드는 데 관심이 많지만 큰 살림을 하느라 여의치 않았다. 내 나이 서른 살에 우연히 한복을 봤는데 그 색이 너무 고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더라. 닭고기를 너무 좋아해 치킨 집을 차릴까 했는데 한복이 눈에 들어온 것을 계기로 광장시장에서 한복 원단 사업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색을 보고, 색을 갖고 노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서서히 단골이 생기고, 자신감도 붙었다. 직접 한복을 디자인하기로 결심한 것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심심풀이로 색을 매치하고, 디자인을 했는데 그것을 훔쳐가는 이들이 있었다. 너무 얄미워 직접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아 입소문이 빠르게 났다.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의 아트 디렉터던 패션 디렉터 정구호 씨가 함께 작업을 해보자는 제안을 해온 것도 그때였다. 그 무렵 내가 갈 곳은 청담동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광장시장에 있을 때부터 상류층 고객이 많았는데 막상 약혼식이나 결혼식 준비를 할 때는 “이 선생 옷을 정말 좋아하는데 사돈을 이곳으로 데려오기가 좀 그렇네” 하는 속 얘기를 들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에피소드도 있다. 청담동에 숍을 오픈하기 전에 점을 본 적이 있다. 방송국에 다니는 여동생이 “방송국 직원들도 자주 보는 곳이다. 무척 용하다”라며 알려준 곳인데 그곳에 계신 분이 대뜸 그러더라. “색을 가지고 놀겠구먼. 성공하겠어!” 그 말을 에너지 삼아 7년째 이곳(청담동)에서 숍을 운영하고 있다.

왠지 대학교 때도 조신하고 단정하고 소곤소곤했을 것 같다. 어떤 학생이었나? 4년 내내 커트 머리에 운동화를 신고 청바지를 입었다. 그래서 대학 친구를 만나는 것이 가장 어색하다. 한번은 대학 친구들을 만나는데 한복을 입고 나갔더니 나를 몰라보더라. 책을 한 권씩 선물했는데 “어머, 왜 시집이 아니야?” 하고 놀라기도 하더라. 재미있는 것이 한복을 입는다는 사실만으로 종종 내 스스로가 과대 포장된다는 거다. 음식, 특히 국 종류에는 소질이 없는데 음식을 못한다고 하면 그럴 리가 없다며 못 믿으시는 분도 있고, 덤벙대서 물건을 ‘흘리는’ 것도 상상하지 못하는 분이 있다.
연예인, 재벌 등 VIP 고객이 많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이는 누구인가? 한진 회장님 댁의 결혼식이 기억에 남는다. 혼주이신 양가 아버님들도 두루마기까지 갖추어 입고 손님을 맞으셨다. 그날 참석한 많은 외국 손님들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옷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전해 들었다. 회장 사모님께서 한복과 한국의 전통에 대해 관심이 높고 안목도 깊다. 영화배우 송일국 씨도 기억에 남는다. 원래 연예인들 의상 협찬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협찬을 위해 숍에 온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협찬만큼 비싼 것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라고 말했다. 물론 그는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결혼식 날 담연 의상을 입었다.
디자인, 노리개 등 ‘한복 스타일’을 구성하는 요소는 많다. 이 중 가장 멋진 부분, 그래서 우리가 한복을 지을 때 꼭 신경을 서야 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소재, 즉 원단이다. 나는 원단을 ‘장식이 없는 장식’이라고 이야기한다. 색이 먼저 들어오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원단의 생명력과 질감,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니 사전적 의미의 장식은 아니지만 최고의 장식물과 같은 기능을 한다. 한복을 짓는 입장에서도 원단은 중요하다. 원단의 종류에 따라 어울리는 바느질 기법과 형태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원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염색이다. 담연의 경우 일본에서 기모노를 염색하다 한국에 들어온 이들에게 염색을 부탁하는데 미묘한 농담의 차이에 따라 같은 먹색이라도 보라 톤이 도는 먹색, 카키빛이 도는 먹색, 청색이 도는 먹색 등으로 달라진다. 이 미세한 차이가 옷을 럭셔리하게 한다. 원단과 색을 알면 최고의 한복을 고를 수 있다.
이 여름철, 가장 추천하고 싶은 원단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원단이 생고사다. 실크의 한 종류로 여름용 원단이다. 모시는 예쁘지만 구김이 너무 많이 간다. 반면에 생고사는 손으로 힘껏 쥐었다 펴도 구김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원단 자체가 너무 얇아 바느질하는 과정에서 바탕 문양이 쉽게 일그러져 적잖이 공을 들여야 한다. 원단을 짜는 선생님도 생고사로 작업하자고 하면 싫어할 정도다. 하지만 옷을 지어놓고 보면 까끌까끌 시원하면서도 구김이 적어 무척 고급스럽다.
지금 당장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입진 않을 것이다. 한복의 럭셔리에 매혹되지 않는 이도 있을 테다. 한복에 관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최근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한옥, 한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복은 여전히 그늘에 있는 느낌이다. 한복에 대한 경험치가 부족하기 때문인데 한복은 돌, 결혼식 등에만 입는 이벤트용 의상이 아니다. 한복은 사.계.절. 의상이다. 그리고 그 사계절을 한복을 입고 우아하게 즐기는 것 또한 진정한 럭셔리다. 계절마다 최고의 한복을 지어 입고 일상을 보내는 이를 상상해보라. 빛의 속도로 흐르는 시대에 그런 사치가 없다. 이를테면 계절마다 오트 쿠퀴르 의상을 입는 것과 마찬가지다. 럭셔리는 물론 프레타 포르테가 아닌 오트 쿠튀르에 있다.

(위) 조선 시대 중기 <미인도>에서 착안한 의상으로 몸의 곡선을 드러낸 저고리에 풍성한 치마를 매치했다.

이혜순은 2003년부터 청담동에서 전통 의상실 담연을 운영하고 있다. 담연潭蓮은 ‘연꽃이 핀 못’이란 뜻으로 그녀의 꿈은 재능 있는 제2, 제3의 이가 나타나 담연이 하나의 일반 명사로 뿌리내리는 것이다. 2003년 영화 <스캔들>의 의상을 제작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후 영화 <한반도>, <쌍화점> 등에도 참여했다. <마이웨딩>, <행복이 가득한 집> 등 수많은 잡지에 작품을 소개하는데 이는 “우리의 럭셔리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서”다. 소곤소곤 말하는 그녀는 손바느질과 입체적 디자인이 돋보이는 한복 웨딩드레스, 기성복으로도 손색없는 한복 드레스 등 ‘눈부신 한복’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럭셔리 (2009년 7월호) ⓒ Design.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공유페이스북트위터 http://goo.gl/BliAo 프린트스크랩목록

 


Pygmalion effect
누군가 그 숲을 돌보고 있었다
세계 12개 도시 지하철 노선도 리디자인
진심의 순간을 모아 도전하라!
괜찮아, 우리 모두 다르지 않아
월간 디자인
DDB
행복이 가득한 집
마이웨딩
맘&앙팡
럭셔리
맨즈헬스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서울디자인페스티벌